느림보가 이기는 법 — 세계 최대 트레이더 XTX는 왜 속도를 포기했을까
월가의 고빈도 트레이딩(HFT) 하면 보통 이런 그림을 떠올려요. 시카고와 뉴욕 사이에 직선으로 광케이블을 깔고, 그것도 모자라 마이크로웨이브 타워를 세우고, 1000분의 1초, 아니 100만분의 1초를 다투는 속도 전쟁. 맞아요, 그런 세계가 실제로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회사가 하나 있어요. XTX 마켓츠. 외환 시장에서 세계 최대급 거래량을 굴리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우리는 제일 빠른 축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해요. 속도 경쟁에 끝까지 따라가지 않겠다는 거죠. 가장 빠르지도 않은데 어떻게 세계 최대가 됐을까요? 지난 XTX 편에서 답을 “속도가 아니라 예측”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그 답을 한 겹 더 벗겨 볼게요. 사실 예측도 진짜 비결이 아니거든요.
![느림보가 이기는 법 인포그래픽 — 속도가 아니라 예측(순엣지 = E[R|X] − Cost), 예측층의 포화(+1.8%·sub-bp), 벽은 물리(신호 발화 시 반대편 호가 고갈·역선택), 그리고 진짜 비결(웬만한 예측기 × 5만 상품 × 정확한 비용 × 반복)](https://streetsmart.blog/wp-content/uploads/2026/09/xtx-slow-wins-infographic.webp)
이야기를 한 장으로 정리했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이어져요.
1. 속도가 아니라면, 예측일까
자연스러운 다음 추측은 이거예요. “속도 대신 더 똑똑하게 예측하나 보다.” 반은 맞아요.
트레이딩에서 반복 가능한 엣지를 찾는다는 건, 결국 이 부등식을 계속 확인하는 일이에요.
순엣지 = (지금 시장 상태를 봤을 때 앞으로 기대되는 가격 변화) − (거래비용)
수식으로 쓰면 E[R | X] − Cost > 0 인데, 겁먹지 마세요. 말로 풀면 이거예요. “지금 호가창·체결·주변 종목 움직임을 다 봤을 때, 앞으로 예상되는 이익이 수수료랑 슬리피지를 빼고도 남는가?” XTX가 잘하는 건 저 앞부분, E[R | X] — 시장 상태를 보고 “이 가격이 진짜 맞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맞히는 거예요.
2. 저도 직접 만들어봤어요 (그리고 벽에 부딪혔죠)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진짜 이야기예요. 저는 이 방식을 작은 규모로 직접 만들어봤어요. 암호화폐 시장 데이터로, 조건부 공정가치를 예측하고 그 오차를 먹는 시스템을요.
처음엔 신났어요. 단순한 규칙에서 머신러닝 예측으로 넘어갔더니 예측력이 세 배로 뛰더라고요. “오, 이거 되겠는데?”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어요. 피처를 더 넣어도, 모델을 더 키워도, 예측력이 거의 안 늘어요. 제 실측으로는 그 뒤로 겨우 +1.8%. 방향을 맞히는 능력은 분명히 실재하는데, 그 크기가 1bp(0.01%)도 안 되게 얇았어요.
예측층은 생각보다 빨리 포화돼요. 천재적인 모델을 만들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금방 천장에 닿아요.
3. 벽은 ‘물리’예요
왜 모델을 더 키워도 안 될까요? 벽이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의 문제라서 그래요.
생각해보세요. 제 신호가 “지금 오른다!”라고 뜨는 순간, 시장의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걸 봐요. 그래서 제가 사려고 하면 반대편(매도 호가)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요. 좋은 가격에 못 사는 거죠. 그렇다고 얌전히 지정가를 걸고 기다리면? 이번엔 내가 틀렸을 때만 체결돼요. 가격이 내릴 걸 남들이 먼저 알고 나한테 떠넘기는 거죠. 이걸 역선택이라고 해요.
즉 신호가 좋아도, 그 신호로 실제 체결을 얻는 순간 이익이 증발해요. 이건 모델을 더 똑똑하게 만든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에요. 호가창의 물리거든요.
4. 그리고, 정직해야 했어요
더 뼈아픈 것도 있었어요. 수익이 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측정의 착시였어요.
- 성과를 재는 기준선을 잘못 만들었더니, 완전 무작위 가격에서 돌려도 플러스가 나왔어요. (이야기가 궁금하면 백테스트가 거짓말하는 법 편에서 자세히 다뤘어요.)
- 데이터가 도착하는 시간을 착각했더니, 사실상 미래를 한 조각 훔쳐보는 셈이 됐고요.
-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호가에 공짜로 줄 앞자리를 주는 버그도 있었어요.
이런 걸 하나씩 정직하게 걷어내자, “엣지”라고 믿었던 것의 상당수가 사라졌어요. 아프지만, 이게 진짜 출발선이에요.
5. 그래서 진짜 비결은
다시 부등식으로 돌아가요. 순엣지 = E[R | X] − Cost.
앞부분 E[R | X](예측)은 이미 천장 근처예요. 그럼 부호를 가르는 건 뒷부분, 비용(Cost)과 그걸 재는 정직함이에요. 여기서 무릎을 쳤어요.
XTX의 진짜 해자는 “BTC 호가창을 세상에서 제일 잘 읽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애초에 천장이 낮으니까요. XTX의 비결은 이거예요.
웬만한 예측기 × 5만 개 상품 × 정확한 비용 모델 × 무한 반복.
한 상품에서 한 번에 먹는 건 1bp도 안 돼요. 하지만 그걸 5만 개 상품에, 비용을 티끌까지 정확히 계산한 위에서, 매일 수백만 번 반복하면 어마어마한 사업이 되는 거예요. 천재적인 한 방이 아니라, 아주 조금 맞되 모든 곳에서 싸게 반복하는 것. 그게 느림보가 토끼를 이기는 법이에요.
그래서 저 같은 개인의 다음 성장도 “알파를 더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찾은 작은 알파를 정직한 비용 위에서 많은 상품에 반복 적용하는 기계를 만드는 데 있더라고요. 방향이 완전히 바뀐 거죠.
한 줄로 남기면
빠른 놈이 이기는 게 아니에요. 심지어 제일 똑똑한 놈도 아니에요. 한 번에 아주 조금 맞되, 그걸 정직한 비용 위에서 넓게, 싸게, 지치지 않고 반복하는 놈이 이겨요.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건 늘 그런 쪽이었어요.
정직한 각주
두 가지를 분명히 해둘게요. 첫째, XTX의 실제 내부는 비공개예요. “속도보다 예측·상관자산·폭으로 경쟁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원칙이지만, 그 회사가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는 저도 몰라요. 둘째, 이 글의 구체적인 수치 — 예측 포화 +1.8%, sub-bp, “벽은 물리다” — 는 XTX의 장부가 아니라 제가 암호화폐 데이터로 직접 복제해보며 얻은 실측이에요. 남의 성공을 해설한 게 아니라, 그 원리를 제 손으로 따라 만들다 부딪힌 벽의 기록이라는 뜻이에요.
이 글은 특정 종목·전략의 매수 추천이 아니며, 투자 조언이 아니에요. 트레이딩에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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