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원달러 환율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환율이 1,480원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져요. 지금 환율은 너무 높은 걸까요, 아니면 이게 새로운 정상일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데이터를 붙잡고 꽤 오래 씨름을 했어요.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을 편하게 풀어놓은 이야기예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적정환율은 계산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로 앞날을 맞힐 수는 없어요. 그리고 요즘 원화가 약한 이유의 절반 이상은, 흔히 듣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해명이 안 돼요.
숫자와 근거는 아래 한 장에 다 정리해뒀어요. 글은 이 그림을 따라가면서, 각 단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로 풀어볼게요.

가장 그럴듯한 방법이 가장 위험했어요
처음 떠올린 방법은 단순했어요. 원달러 환율과 달러인덱스를 나란히 놓고 “달러가 이 정도면 원달러는 보통 이 정도였지”라는 선을 긋는 거죠. 그 선보다 위에 있으면 원화가 싼 거고, 아래면 비싼 거고요.
돌려보니 그럴듯한 숫자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게 함정이었어요. 둘 다 꾸준히 오르는 추세를 가진 데이터라서, 사실 아무 관계가 없어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통계학에서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착시예요.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물놀이 사고가 같이 늘어난다고 아이스크림이 사고를 일으키는 게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방법을 바꿨어요. “수준”이 아니라 “변화”를 보는 거예요. 달러가 1% 움직일 때 원화가 얼마나 따라 움직이는지를 재봤더니, 대략 절반쯤 따라가더라고요. 이건 이 분석 전체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확인된 숫자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교훈이 나와요. 적정환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1,208원부터 1,465원까지 벌어져요. 무려 250원 차이예요. 그러니 “적정환율은 얼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기사를 보시면, 그 숫자 뒤에 어떤 계산이 숨어 있는지부터 의심해보세요. 적정환율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넓은 범위예요.
더 좋은 도구를 써도 답은 비슷했어요
혹시 더 정교한 통계 기법을 쓰면 나아질까 싶어서 몇 가지를 더 시도해봤어요. 어떤 건 실패했고, 어떤 건 기술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결론은 똑같았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이 있었어요. 모형에 아무 가정도 강요하지 않고 데이터가 말하게 두면, “환율이 돌아가야 할 자리” 같은 건 아예 없다고 나와요. 환율의 균형점 자체가 계속 떠돌아다니는 거예요. 우리가 “적정환율”이라고 부르는 건 데이터가 알려준 사실이 아니라, “최근 1년 평균 근처로는 돌아오겠지”라는 가정을 우리가 얹은 결과였어요.
“싸면 오른다”는 기대도 무너졌어요
그래도 실용적인 희망이 하나 남아 있었어요. 지금 환율이 적정 수준보다 높으면, 시간이 지나면 내려오지 않을까? 그럼 투자에 쓸 수 있잖아요.
처음엔 그런 신호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데이터를 제대로 다듬고 다시 보니, 그 신호는 통계 처리 과정에서 생긴 착시였어요.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검증했는데 세 번 다 같은 답이 나왔어요. 갭은 “지금 환율이 평소 관계 대비 높다/낮다”를 진단해줄 뿐,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혹시 이런 지표를 매매 신호로 쓰고 계셨다면, 이 부분은 꼭 기억해주세요.
그럼 원화는 무엇에 움직일까요
변수를 하나씩 넣고 빼면서 확인해보니, 몇 가지 통념이 깨졌어요.
먼저 원화는 달러만큼이나 위안화에 민감해요. 하루하루 움직임만 보면 오히려 위안화를 더 따라가요. 시장에서 오래 떠돌던 “원화는 위안화의 대리인” 이야기가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에요.
반대로 한미 금리차는 생각보다 힘이 없었어요. 교과서대로면 한국 금리가 오르면 원화가 강해져야 하는데, 데이터에서는 그런 관계가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요즘은 한국 금리 상승이 “매력”이 아니라 “불안”으로 읽히는 듯한 흔적까지 있었고요.
그 밖에 유가, 엔화, 수출액도 시험해봤지만 모두 탈락했고, 의외로 살아남은 건 미국의 반도체 경기였어요.
그런데 설명이 안 되는 9%가 남아요
여기가 이 분석의 핵심이에요. 지난 1년 동안 원달러는 7% 넘게 올랐는데, 위에서 찾은 요인들을 다 합쳐도 이 상승이 설명되지 않아요. 오히려 거꾸로예요. 한국 수출은 사상 최고고 반도체는 호황이라, 교과서대로면 원화는 강해졌어야 하거든요. 그런데도 환율은 올랐고, 설명 안 되는 몫이 9%포인트나 돼요.
무역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고, 금리도 아니라면 남는 용의자는 하나예요. 돈의 흐름, 즉 자본이에요.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해외 주식과 해외 자산으로 빠져나가는 달러가 더 많다면,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원화는 약해질 수 있어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 쌓여가는 외화예금 같은 것들이요. 이 가설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게 다음 글의 주제예요.
남은 이야기
다섯 번의 시도 끝에 남은 건 이거예요. 적정환율은 범위로만 말할 수 있고, 갭으로 미래를 맞힐 수는 없고, 지금 원화 약세의 진짜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어요.
“결국 모른다는 거네”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맞아요.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 아닌지를 하나씩 지워나간 끝에 도달한 “모른다”는, 막연한 “모른다”와는 달라요. 이제 어디를 파야 하는지는 분명해졌으니까요.
이 글의 분석은 미 연준, FRED 등 공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고, 투자 조언이 아니에요. 이 분석의 가장 확실한 결론이 “갭에 예측력이 없다”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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